<마당을 정복한 냥아치> #사고뭉치들의 봄

2022. 5. 5. 21:51writing/마당을 정복한 냥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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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내가 챙기는 건 언제나 우리 노묘 밥이었다. 하지만, 삼순이가 나타난 뒤로 내 일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2층 창고에 무단 침입해 방세도 안 내고 거주한 냥아치 ‘삼순이 패밀리’가 우리 똥노묘를 재끼고, 1순위가 되어 버렸다. 냥아치들과 함께 맞이한 그해 첫겨울은 참 추웠다. 챙겨주는 사람 섭섭하게 꽁지 빠지게 숨던 뽀시래기 세 마리는 어느덧 계단을 내려다보며, 당당히 날 기다리기 시작했다.

인간, 밥은 가져 왔냥?

날 기다린다고 해서 만질 수 있을 정도로 친해진 건 아니었다. 언제나 녀석들과 내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미묘한 일정 거리라는 게 있었다. 내게 밥을 얻어먹으려, 주변만 맴돌 뿐 곁을 주지는 않았다. 아마도 사람 손에 키워진 적이 없는 길냥이였으니깐 당연했던 거 같다. 점점 따뜻해지는 봄날에 꽃밭은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고,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햇볕 쬐는 냥아치들을 경계하는 우리집 노묘 '타로씨'

그렇게 찾아온 봄소식에 2층 창고에서만 지내던 뽀시래기들도 발 빠르게 활동 범위를 넓혀 가기 시작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꽃밭은 뽀시래기들이 햇볕 쬐며 낮잠 자는 쉼터가 되었고, 옆집 양철 지붕은 우다다를 즐기는 녀석들의 시끄러운 놀이터가 되었다.

옆집 지붕 위에서 집안을 노려보는 '젖소 고등어' 뽀시래기

그러던 어느 날, 늦은 밤 '퍽'하는 소리에 놀라 바라본 창문에는 '삼색' 뽀시래기가 방충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아무래도 지붕에서 창문을 통해 집안으로 침입하려고 점프를 시도한 것 같았다. 사실 옆집 지붕과 내 방 창문은 점프하면 충분히 들어올 수 있는 아주 가까운 거리였다.

호기심이 많은 개척자 '삼색' 뽀시래기

하지만 옆집 지붕과 맞닿은 창문은 여름이 오기 전까지는 잘 열지 않는 쪽창으로, 집 안이 보이는 유리창이라는 걸 알리 없던 호기심 많은 '삼색' 뽀시래기는 영역 확장을 위해 점프를 시도했다가 그날 밤 그렇게 매달려 방충망만 찢고, 영역 확장의 꿈은 대실패로 돌아갔다. 그때는 미처 몰랐지만, 삼순이 새끼 중에 제일 작고, 호기심 많은 '삼색' 뽀시래기는 이미 이때부터 방랑병이 가득한 개척자였다.

겨울 내내 2층 창고에서 지냈던 뽀시래기 세 마리는 오줌똥으로만 '욕’ 마일리지를 적립해둔 게 아니었다. 그 해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고서야 알게 됐다. 아버지의 쓸 때 없는 고집으로 인해 제작한 박스가 창고 안에 쌓여 있었는데 냥아치들은 사는 동안에 눈치 없이 제작한 박스를 스크래처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밥을 준 자의 업보라고나 해야 할까? 녀석들이 적립해둔 '욕’ 마일리지는 해마다 박스를 접어야 하는 여름이 오면, 봇물 터지듯 내게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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