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을 정복한 냥아치> #서막

2022. 2. 12. 13:58writing/마당을 정복한 냥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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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캣맘이 되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던 사람이었다. 이미 고양이 한 마리를 10년 넘게 키우고 있었고, 이런 노묘 한 마리도 내가 책임지기에는 내 인생이 너무 녹록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랬던 내가 베풀었던 선의에 코 낄 줄은 몰랐다.

시발점이 된 냥아치를 만난 건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아마 2019년 10월쯤. 집 주변을 돌아다니던 길냥이가 있었다. 우리가 흔히 보는 고등어 무늬가 들어간 삼색이었다. 그냥 '동네에서 누가 키우는 애인가보다'라고 생각을 했다. 시골에서는 아직도 꼬리를 자르는 어르신들이 있기 때문에 꼬리가 유독 짧은 녀석이라 당연히 동네 어르신이 키우는 아이로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벼 말리는 기계실 안 구석에서 녀석을 마주하게 됐다. 처음에는 '요즘 날씨가 추워서 들어왔나 보다.'라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혼자인 줄 알았는데 가만히 보니 새끼 세 마리를 품고 있었다. 기계실에서 새끼를 낳은 거 같았다. 나 때문에 불편해지는 이 상황에 난 그냥 조용히 나왔다. 그렇게 며칠 뒤, 말아 둔 덕석에 삼색이가 누워 있었다. 주변을 왔다 갔다 하는데도 반응이 없고, 축 쳐진 게 꼭 죽은 거 같이 보였다. '새끼 낳고, 힘들어서 죽은 건가?' 그런 생각에 묻어주려고 다가가는 순간에 삼색이가 눈을 떴다. 도망가지도 않고, 다 풀린 눈으로 날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런 녀석의 모습이 내 눈에는 기운이 없어 몸을 못 가누는 거 같이 보였다. 안쓰러운 마음에 부랴부랴 사료와 캔을 가져다가 비벼 덕석 앞에 놓았다. 어미는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많이 먹어, 삼색아. 아니 여자 애니깐 삼순인가?" 무심코 내뱉은 말에 삼색이는 "야옹~"하며 대답을 해줬다. 그렇게 녀석의 이름은 답정너 삼순이가 됐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별생각 없이 베푼 이 한번의 선의가 내 발등을 찍었다는 걸...

나는 누굴까요?

지금에 와서 든 생각이지만, 그때 삼순이는 느긋한 성격으로 따뜻하게 데워진 덕석에서 햇살을 받으면 일광욕 중이었던 거 같다. 기운 없이 쳐다보던 것도 단지 잠이 덜 깬 비몽사몽한 상태여서 그랬던 거 같다. 혼자 착각해서 덥석 밥을 받쳤으니, 녀석의 눈에는 이곳이 바로 무릉도원이었겠지? 좀 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삼순이는 시체처럼 누워, 다 죽어가는 척, 우리 엄마한테도 밥을 얻어먹고 있었다. 그야말로 얼굴 두꺼운 냥아치였다. 그렇게 녀석은 내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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